풀 불 물
그 림 의 대 상
인간의 삶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이나 예뻤다가도 하염없이 허무하게 져버리는 꽃, 혹은 케이크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잠깐 타오른 작은 성냥과 다를 것이 무얼까 싶다. 어제의 어여쁜 꽃은 급속도로 건조해 지고 말라간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종자들이 같이 모여 있는 모양도, 처음의 에너지가 넘쳤던 그 모습도, 말라 버린 후에 어느 부분은 여전히 곧고 굳센 형태로 남겨진 것조차도 인간의 군상, 노화 혹은 희로애락을 형상화 한 듯 보인다. 이런 과정을 한 화면에 어느 정도 시간성을 갖도록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의 목적이었다. 형태가 확실하지 않고 희미한 부분들은 그 모호함 속에 시간이라는 여백을 담도록 했다.
나는 또한 산책 중 지나가는 풍경 속에 자연이 주는 추상성에 주목해왔다. 땅을 보든 하늘을 보는 순간이든 그 때 보이는 조용하면서 오밀조밀한 형태. 씨가 떨어지고 새로운 꽃이 나오고, 거무튀튀한 낙엽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흩뿌려진 작고 푸른 아기 잎을 보면 그 모습들이 하나의 일생/一生/life span을 노래하는 작은 추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것을 거대하게 확대시키거나 그린 후 지우는 과정을 통해 더 대상을 추상화하고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과 형태들을 통해 건조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와 그럼에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인간의 리드미컬한 삶을 담고 싶었다. 내가 방금 본 풍경이 모호한 추상처럼 느껴질 때, 목적이 없는 몽롱한 머릿속 상태가 될 때 나는 그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바쁜 삶 속에 작은 치유였던 것 같다.
그 림 의 과 정
작업하는 순간에는 매우 직관적 감성에 충실하도록 했다. 이전의 작업은 기존의 자수 작업이 그러했듯, 나의 행위조차도 기계적인 방식으로 제한을 둔 후 사회의 노동자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그림자체가 갖고 있는 매체에 더욱 집중을 하고 싶었다. 제일 처음으로는, 작업할 때 듣던 컨텐츠들을 싹 바꿨다. 그림이라는 노동의 지루한 시간을 달래줄, 복잡하거나 흥미로운 내용을 전달하는 컨텐츠들이 아닌 주로 클래식이나 재즈 등의, 가사가 없이 리듬과 박자, 화음으로만 이루어진 음악만을 듣고 작업했다. 연주자가 인상을 바짝 쓰고 바이올린을 연주 하듯. 나는 붓질이 활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린 것 같다.
심호흡을 하고 무대에 서기 전의 어떤 무용수처럼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온전히 캔버스와 나만 있는 것 같다. 약간은 어둡고 노란 빛의 조명도 중요했고 그러다 정말로 어떤 날은 캔버스 자체가 무서운 대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맞서 싸우듯 달려드는 것. 캔버스와 씨름을 하듯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여러 종류의 다짐들을 해야 했던 것 같다.
일단 이런 식의 작업도중 가장 고민이었던 것은 종이에 드로잉을 할 때처럼. 캔버스에 자유로운 붓질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거대하고 묵직한 캔버스라는 틀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가벼운 종이에 슥슥 그리는 듯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롤로 말려있는 천을 종이처럼 임의로 잘라가며 그리기도 했다. 부드러운 붓질의 텍스쳐를 위해서는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오일을 마치 수채화의 물처럼 많이 쓰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굳기 전에 흘러내리는 점성 또한 조절하기 위해 하루치의 양을 다 그린 그림은 집에 가기 전 적당한 기울기로 눕혀 놓는다.
망친 것 같았던 날, 조금은 괜찮게 보이던 날, 잘 모르겠던 날... 이 모든 과정이 한 화면에 겹겹이 담겨있다. 괜찮아 덤벼들어. 엉망진창 망쳐도 된다고 매번 나 자신에게 당부했던 것 같다. 그림 앞에 서서 지금의 내가 옳다고. 두려움을 버려야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업의 알맹이 자체가 과정에 있는 것 같고 완성의 지점 또한 매우 애매한 듯보였다. 여러 번 고민했던 완성의 지점은 한 화면을 내가 전체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지휘자고 이 한 팀의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보고 있다고 느낄 때, 그리고 그 컨트롤의 결과물이 조형적으로 조화롭다고 보일 때 그 순간이었다.
20200318 허보리
Grass Fire Water
My Grandmother was like a withered grass when I saw her a few years before she died. While I was massaging her legs, I suddenly reminded me of the moment, that I picked the withered flower from the vase to throw it away. The touch of her legs was the same with the withered flower. Vanitas Paintings, which I always loved, slid by. I wanted to capture the process of the falling of blossoms on an image, as it is likewise the human life. The repetition of painting and erasing has no difference with the thing that we are struggling to live.
I wiped the image I drew yesterday out, which was less withered than today, and recorded today on it. Erasing the paintings was a bit regrettable, as it feels like I was vandalising my labours. However, it seems that I wanted something vague. Like the yesterday, our tomorrow is also unclear.
The title of the exhibition, Grass Fire Water is a display of the images from;
When the green alongside the street becomes empty, where once was dense
A match flamed for a moment to light the birthday candle
Grandmother's body without moisture
All three of them as a similarity in temporariness
200318 Hur boree